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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2001년 영국에서의 10개월 생활

2000 밀레니엄에 맞춰 영국 출국

병장 때 영국을 꿈꾸다

2000년 1월 인천 부평에서 병장으로 복무를 하고 있을 때 부모님께서 영국에 어학원 다니면서 학생 비자로 일도 하고 지낼 수 있다는 정보를 나에게 알려주셨다.
4월에 말년 휴가를 나와 알아본 결과 학교는 Everdime인가 하는 학교이고 1년 학비가 당시 200만원인가 했던걸로 기억하고, 그리고 영국 1년 오픈 비행기가 130만원 했던걸로 기억이 된다.
당시 2000년도에는 인터넷이 군대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영역이라 (휴대폰은 커녕 휴대용 라디오도 못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말년에 영국에 관련된 정보를 찾는건 힘들었고, 내가 참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 여행 책자 뿐이었다.
병장 만기 전역을 하고 약 보름 정도 잘 쉬다가 2000년 5월 2일 티켓을 예약을 하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처럼 4계절이 비슷하다고 하여 이민용 가방에 들어갈 정도의 양으로 봄 가을, 여름과 겨울 옷을 준비하였다. 영국이 당시 우리나라 물가의 3~4배 정도여서 모든 물품을 한국에서 준비하여 가지고 갔다.
군에 있을 때 몇 개월 엠블란스를 몰아서 약 제조를 할 수 있었기에 당시 우리나라 병원과 약국의 의료 분업이 되기 전이라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항생제 등등의 약제를 모두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군에서 제조했던 약물들을 모두 구매하여 가져갔었는데… 결과적으로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아 그대로 다 버리고 들어왔다.
이렇게 나름 준비를 철저히 해서 드디어 2000년 5월 2일 새벽에 집에서 나와서 김포 국제 공항으로 (당시 인천 공항은 없었다) 향했다.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우다

하지만 평소에 안하던 행동을 하면 안되었다. 나는 당시 반지갑을 들고 다녔고 이걸 바지 오른쪽 뒷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만남의 광장 휴게서에서 급하지도 않았는데 화장실에 갔다. 보통 지갑을 빼지 않고 볼일을 보는데, 그때는 괜히 빼고 싶은 생각이 들어 지갑을 빼고 챙기지 않고 그대로 나와 버렸다. (당시 만남의 광장에 좌변기는 없었고 쪼그려 앉는 변기 밖에 없었다)
화장실에 지갑을 두고 나왔다는걸 깨닫고 다시 차를 돌려 만남의 광장에 갔을 땐 이미 없었고, 분실물 센터에도 지갑이 들어온게 없었다. 지갑 안에는 국제 학생증, 여행자 수표, 현금, 신분증 등이 있었는데 국제 학생증은 다시 발급했고, 여행자 수표는 분실신고를 하고 영국에서 다시 받기로 했고, 현금 및 신분증은 없어진채로 다음날 출국을 하게 되었다.

출입국 건강검진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을 한 뒤에 수화물 찾고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려는데 옆으로 빠져서 신체 검사 받으라고 통보를 받게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해외를 나가는거라 어리둥절 하면서 대략 한 시간을 기다리고 신검을 받고 대략 2시간 뒤에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알고보니 랜덤으로 정말 걸리는게 드물게 착출? 이 된다고 하는게, 그 드물게에 내가 걸렸다. 도착 한번 버라이어티 하다. 젠장…

대중교통 이용으로 숙소까지

군대를 막 전역해서 그런지 무서움이 없었다. 저녁에 공항에서 나와서 전철을 타고 숙소에 물어 물어 찾아갔다. 숙소는 Euro Tower 라는 호스텔이었는데, 제법 규모가 컸었다. 내가 영국에 있을 때 망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거기가 당시 제일 저렴한 방이라서 거기를 숙소로 잡았다. 당시 4인 도미토리 하루 10파운드였다.

숙소가 직장이 되다

대략 일주인가 이주 정도 살곳을 찾고 일자리를 알아보는 사이에 당시 나보다 한 살인가 두 살 많은 중국인 여자 청소부가 있었다. 매일 얼굴을 마주치게 되니 인사하다가 간단한 안부 정도 묻는 사이가 되었고, 나는 일거리를 찾을 만한 곳이 있는지 물어봤더니 지금 있는 유로 타워에서 오전에 청소하면 숙박을 제공한다고 하여 인터뷰를 하고 바로 취업을 한다. 그런데 숙소로 지정된 곳은, 군대를 막 전역 했으니 거기에 묵었지, 지금이었다면 절대로 거기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주방 바로 옆에 큰 방에 3~4명이 지낼 수 있게 되었고, 자다가 몸이 좀 근질 거리면 바퀴벌레가 나를 밟고 지나가는, 그러한 열악한 환경이었다.

2000.07.05.수 | Centre로 이동을 하다

당시 유학생들이 그랬듯이 스마트폰이 없고 인터넷이 보급이 잘 안된 영국에선 교회라는 공동체에 모여 정보도 얻고 어울렸다. 나 역시도 런던 순복음 교회에 가서 형, 누나, 동생들을 사귀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나랑 동갑은 없었다.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하겠지만 런던 순복음 교회와 라스팔마스 순복음 교회에서 협업으로 스페인 라스팔마스에 가서 여름 성경학교를 도와주는 대신 관광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어 약 열흘 정도 숙소를 비우게 되었다.
런던 순복음 교회에는 센터라는 장소를 운영하여 두 분의 전도사님이 거기서 지내며 두분 말고 S형, J형 그리고 M누나 이렇게 총 5명이 지내고 있었다. M누나는 집을 알아보게 되어 나게 되었다. 형들하고 지내고 같이 지내면 재미있고 해서 나도 거기에 들어가고 싶어서 유로 타워에서 여행 다녀온 뒤 쫓겨 났다고 거짓말을 하고 센터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진에 보이는 흰색티가 J형이고 검적색 상의가 S형이다. J형과 S형 모두 한국에 들어와서 연락이 되었는데, 준희형은 연락이 끊기고, 수화형은 현재 중동 지역 선교사가 되어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 받는다.
아무튼, 그렇게 담임 목사님의 승낙을 받게 되어 2000년 7월5일 수요일 유로 타워에서 센터로 들어가게 된다.
위 이미지는 센터로 가방 싸서 들어가고 있는 사진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센터가 참 좁은 곳인데 거기에 5명이 살았다니…

재미있게 런던 생활을 하다

내 생일에 생파를 해주고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단기 선교단을 파견해서 얼떨결에 런던 관광을 하게 된다.

독일에서 초등, 고등학교 동창이 찾아오다

독일에 당시 나의 초등학교이자 고등학교 동창인 EH (여) 라는 친구가 런던에 놀러왔다. 본의 아니게 내가 관광 가이드를 하게 되었고, 짧은 2박3일 이었지만, 사진은 지금까지 계속 보관하고 있다. 이 친구는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데, 울산 교향단 오보에 수석으로 지내고 있다.

다국적 친구들을 사귀게 됨

역시 영국에 있으면서 백인들과 지낸다는건 어불성설이고 끼리끼리 모인다고 아시아계들과 모이게 된다.
위에 사진에 있는 인종은 몽골, 대만, 일본, 중국, 태국, 필리핀, 그리고 코리아이다. 누가 코리아인지는 뭐 말을 안해도… ㅎㅎ

교회 모임에 충실

같은 한인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교회라는 공동체 밖에 없다고 위에 언급했는데, 그래서 교회 행사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지금 이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나 궁금하다.

대학 선배들 방문

당시 무역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대학 선배가 전화가 왔는데 지금 런던이라고 하면서 온김에 얼굴 보자고 해서 만나서 피쉬앤 칩스를 사드리고 암스테르담에 가는 버스를 태워드렸다. 이때 먹은 피쉬 앤 칩스가 영국에서 먹은 처음이자 마지막 피쉬앤 칩스였다.

나의 첫 전시회

내가 다녔던 회사는 여성 악세서리를 인도와 한국에서 수입하여 로컬 도매점에 판매하는 작은 회사였다.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중국인들과 같이 일을 대부분 했다. 당시 나의 시급은 4파운드였다.
나는 그렇게 버밍험, 맨체스터 등등 출장을 자주 다녔고, 납품도 다니고 전시회도 참가하게 되었다.
또한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도 내보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셔널갤러리

제일 후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내셔널갤러리 앞을 그렇게 자주 지나가면서 한번도 들어가본적이 없었다는것이다.
10개월간 있으면서 한번도 안 가봤다는게, 지금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사진에 대해 잘 몰랐을 때

2000년 초에 나는 나의 첫 디지털 카메라를 구매를 했다. 지금도 가지고 있지만 후지 파인 픽스다. AA 배터리 4개가 들어가는 130만 화소짜리 디카였다.
130만 화소라고 해도 풍경이나 영국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사진들을 많이 찍지 않았던것도 지금에 와서 후회가 된다.

힐러리

내가 영국에 있을 때 많은 도움을 준 힐러리에게 고맙다고도 얘기를 하고 싶다. 지금은 한국 남편과 결혼하여 영국에서 자식 낳아 잘 살고 있다고 들었다. 나이를 절대로 알려주지 않아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나보다 최소 15살은 많았던 것으로 예상이 된다. 힐러리의 많은 도움을 받아 영국 생활도 잘 마칠 수 있었고, 나를 공항까지 태워주기까지한 정말 착한 분이다.

대영 박물관

대영 박물관도 딱 한번 밖에 안 들어가본게 지금에선 이해가 안되는 부분 중에 또 하나이다. 난 정말 이때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였다. 누가 나에게 알려주지 않고, 대한민국에 살면서 주입식 교육을 받아 자기주도적으러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은 나쁜 습성 때문이지 않나 싶다. 누군가를 탓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평생 누가 시켜서 하는 삶만 살다보니 시키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20대 초반의 영국생활을 하게 되었다.

2000.03.28.수 | 영국에서 한국으로 떠나다, 그리고 인천공항 오픈 첫날 이용객이 되다

힐러리가 태워줘서 히드로 공항에 가게 되었다. 원래는 1년 더 영국에 머무르려고 했는데, 학업을 먼저 마치는게 나을것 같은 생각이 들어 갑자기 입국을 하게 되었다. 3월 28일 수요일 영국을 떠나 한국에 29일 도착하게 된다.
2000년 3월 29일은 인천공항이 첫 개시를 알리는 날이었다. 덕분에 수화물 찾는데 2시간이 걸렸다. 마중 나온 작은외삼촌과 엄마 기다리시느라 많이 힘드셨을거다.

마무리

이렇게 나의 10개월간의 영국 생활을 짧은 버전으로 적어봤다. 당시 영국에 있었을 때 일기를 나름 적었기 때문에 지금 그 일기를 읽어보면 꽤나 재미있고, 23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게 있는 반면 내가 이런것 혹은 이런곳에 갔었던가 라고 하는 부분도 없잖아 있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서 이때로 되돌아 간다면 정말 10개월이라는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된다. 지금 이순간도 먼 훗날에 지금 다시 저 때로 간다면 잘 보낼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생활을 하는것이다.
다음 포스팅은 영국에 있을 때 스페인 라스팔마스에 간 이야기를 써보도록 하겠다.